[인터뷰] 남윤수의 도움닫기
(서울=파이낸셜리더스) 이수민 기자 = <인간수업> 속 남윤수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그동안 수많은 배우들이 불량 학생 연기를 선보였지만 남윤수에게는 그들과 다른 비(非)전형성과 자유로움이 있다. 흔한 설정에도 자꾸만 눈이 가는 이유다. 변화를 거듭해온 최근 10대들의 성향과 움직임, 말투까지 디테일하게 흡수하며 정말 어딘가에 살아 있을법한 인물 ‘기태’를 구사해냈다. 생동감 넘치는 표현력과 어떤 습관도 없는 날것의 연기, 신예 배우만이 가진 특권이 <인간수업> 속 기태와 완벽한 시너지를 발휘했다. 바로 지금, 배우 남윤수의 완벽한 도움닫기 순간을 찾았다.
지난달 2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은 돈을 벌기 위해 죄책감 없이 범죄의 길을 선택한 고등학생들이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과정을 그린다. 남윤수는 사건의 중심에 있는 서민희(정다빈)의 남자친구이자 학교 내 일진 기태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력을 선보였다.
◆ 어차피 기태는 남윤수? "실제와 정반대였죠"
연출을 맡은 김진민 감독은 앞서 남윤수와 첫 미팅 때부터 그를 눈여겨봤다 밝힌 바 있다. 당시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냐는 물음에 남윤수는 “감독님이 기태는 웃고 있지만 어딘가 나쁜 사람의 얼굴이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너 같은 애가 일진을 해야지’라고 하시더라.(웃음) 저도 감독님 말처럼 웃고는 있는데 어딘가 나빠 보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다. 주위 사람들이 차가워 보인다고 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 말에 저 역시 공감을 했던 것 같다”며 털털하게 웃어 보였다.
첫 대본부터 충격적이었다. 10대 청소년들의 각종 범죄와 어두운 이면을 정면으로 다루는 만큼 작품 선택까지도 많은 생각들이 겹쳤다. 남윤수는 “처음 대본을 봤을 때는 과연 이게 진짜 있을 수 있는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어쩌면 내 주변에도 벌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부담도 함께 오긴 했지만 충분히 의도가 잘 전달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대본을 보면서 경각심이 일깨워지더라. 10대 때 자신의 행동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남윤수는 <인간수업> 속 실감 나는 일진 연기로 많은 대중들에게 제대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어디서 진짜 일진을 데려왔느냐’, ‘이게 진짜 하이퍼리얼리즘 연기’등의 반응이 이어지며 그의 연기를 다시 봤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그는 하루에 한 번씩 반응을 찾아본다고 웃으며 “처음에는 그런 반응이 너무 신기했다. 많이 와닿은 것 같다”라며 “덕분에 앞으로도 여러 가지 캐릭터를 도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전 작품에서 보여줬던 이미지랑 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이었는데 ‘얘가 이렇게도 연기를 하네’라는 반응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감사한 일이다”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인생 캐릭터를 남길 수 있었던 데는 감독님의 믿음도 한몫을 했다. 남윤수는 “감독님이 늘 현장에서 나를 믿어주셨다. 나에게 ‘기태야 넌 할 수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한 마디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늘 현장에서 크게 외쳐주셨다. 더 믿음이 갔고 나 역시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거칠고 불량한 캐릭터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만큼 힘든 순간도 찾아왔다. 가장 고생했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남윤수는 “표면적으로는 괜찮았지만 지수(김동희)를 때리는 장면은 특히 힘들더라”라며 “사람을 그렇게 때려본 적이 없어서 끝나고 나서도 계속 불편했다. 상상이 계속돼서 힘들더라.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촬영이 끝나면 기태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오는데, 습관이 남은 경우는 있었다. 드라마 속에서 기태가 욕을 굉장히 많이 하지 않나. 그러다 보니까 평상시에도 자연스럽게 언어가 그렇게 되는 경향이 있더라. 친구들이 갑자기 왜 욕을 하냐고 해서 그제서야 나도 모르게 쓰고 있었음을 깨달았다”라고 회상했다.
작품 속 기태와 달리 남윤수는 실제 학창 시절 모범생에 가까웠단다. 그는 “리더십이 있는 편도 아니었고 기태처럼 누굴 괴롭히거나 한 적도 없다”라며 “학창 시절 학교도 무척 열심히 성실하게 다녔다. 일 년 반 정도는 꾸준히 새벽부터 등교를 하고 밤늦게 집에 갔다. 학교에서 하는 행사나 선생님이 시키는 일들은 빠짐없이 했다. 원래 성격도 시끄러운 편이 아니라서 학교에서는 조용조용 살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카멜레온 같은 배우가 된다는 것
<인간수업>의 또 다른 성과는 실력 있는 신예 배우들을 대거 조명했다는 점이다. 남윤수를 비롯해 김동희, 박주현 등 많은 대중들에게 아직까지 생소했던 이들의 얼굴을 알리며 존재감을 확실하게 했다.
처음으로 함께 호흡한 세 주연배우에 대해 남윤수는 “먼저 김동희는 중심을 이끌어가는 역할이기 때문에 현장에서도 늘 긴장감 있게 분위기를 조성해 줬다. 정다빈은 평소에 굉장히 귀엽고 순수하다. 촬영에 들어가면 기존에 있던 모습을 버리고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더라. 굉장히 새로운 매력이었다. 박주현은 <인간 수업>이 촬영으로는 첫 데뷔작이라는 걸 얼마 전에 알았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연기를 보여줬다. 정말 놀라운 배우다”라며 극찬했다.
배우로서 따로 롤 모델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꼽기도 했다. 그는 “디카프리오를 말한 이유는 그가 세기의 인기스타로 남아있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그 정도의 배우임에도 늘 색다른 이미지의 캐릭터를 소화하려고 꾸준히 공부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지 않나. 나 역시 다양한 모습을 소화할 수 있는 성실한 배우가 되고 싶어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과 다른 연기 스타일을 갖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작품의 캐릭터에 맞는 체형이나 스타일을 소화하는 것과 동시의 나만의 차별 지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또 ‘이 드라마를 생각하면 이 캐릭터가 생각난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나 장르로는 의외로 ‘악역’을 꼽았다. 그는 “요즘 도전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를 괴롭히는 악역이다. 전작에서는 짝사랑을 하는 역할이었고 이번에는 아무튼 여자친구가 있지 않았나. 이번엔 살짝 다른 연기를 해보고 싶다. 내가 실제 경험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연기로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라며 “최근 <부부의 세계>를 재밌게 보고 있다. 살짝 그 비슷한 느낌일 수도 있겠다”라며 웃었다.
남윤수는 차기작으로 tvN 새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선택했다. <인간수업> 속 기태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또다시 사로잡을 것을 예고했다. 그는 “새 작품에서는 인사성도 밝고 항상 웃는 택배기사로 나온다. 많이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모습 보여 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