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셜리더스) 주서영 기자 = 37년 동안 근무했던 은행에서 퇴직한 지 5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새로운 것들을 접하면서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을까? 이 글을 쓰면서 따져보기 전에는 세월이 그렇게 흘러간 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퇴직한 후배들도 적지 않을 거란 얘기가 된다. 문득 그들은 새로운 삶에 잘 적응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쓸데없는 오지랖은 아닐지 모르겠다.
장수시대의 도래
흔히들 100세 시대를 입에 올린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950년 우리나라 평균 수명은 52.4세였다, 30년 뒤인 1980년에는 65.8세, 2013년에는 82세였다. 이처럼 현기증 날 정도로 수명이 늘어나고 있으니 머지않아 100세 시대가 도래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명한 일이다. 인생을 사계절 비유한다면 60년을 살 때는 한 계절이 15년이었지만 100세 시대에는 25년이 된다. 차원이 완전히 달라지는 셈이다. 오래 산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어찌 보면 무서운 현실이기도 하다. 급속한 평균수명의 연장이 자칫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늘어가는 수명에 비해서 장수시대를 준비하는 속도는 한없이 느리기만 하다. 국가나 사회도 나름대로 대책을 내놓기는 하지만 고령사회화의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개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더 심각하다. 수명은 늘어나는데 은퇴 시기는 오히려 빨라지는 추세에 있다.
은퇴 후의 수십 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모든 아픔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러한 현상은 단시일에 해결하기 어려운 심각한 사회문제이자 개인들에게 주어진 숙제다. 나라에서도 어쩌지 못하니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평생의 업으로 삼아 땀 흘려 일 해온 직장에서 물러난 후 그 세월에 버금가는 기간 동안 아무 것도 안하면서(못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만 같다. 참으로 끔찍한 현실이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퇴직이 주는 충격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다니던 직장에서 나와야 한다.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꾸역꾸역 밀려나온다. 앞서 퇴직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막연히 짐작했던 거와 막상 자신이 퇴직자가 되었을 때의 느낌을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당해본 사람만이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의 위로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직장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듯이 나오는 순간 자신을 기다리는 것은 낯설고 삭막한 것들뿐이다. 세상은 전과 달라진 게 없는데 엊그제와는 전혀 다른 세계로 내던져진듯한 기이한 현상을 접하게 된다. 어리둥절하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쓰지만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채 허둥댄다. 퇴직하면 시간이 많아진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항상 따라다니던 압박에서 벗어나게 된다. 실적에 대한 부담에서 해방되고 느긋하게 아침잠을 즐길 수도 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확 줄어든다. 이게 바로 낙원인가 싶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매월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오던 월급이 거짓말처럼 끊긴다. 내 지시에 따라 움직이던 직원들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다. 남은 건 텅 빈 가슴뿐이다. 어느새 세월이 이토록 빠르게 흘러가버렸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기간 동안 별로 준비를 하지 못한 것도 새삼 깨닫게 된다. 직장에서 나왔다는 엄연한 사실이 점점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에 대한 뚜렷한 계획도 없다.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면서 덜컥 겁이 난다.
퇴직을 하고나서 한동안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쉽게 마음이 상하고 서운함을 느끼게 된다. 잘 대해줬던 후배가 나를 소홀하게 대접한다고 분개하고, 실력도 없는 놈이 연줄을 이용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고 열을 내기도 한다. 따질 일도 아닌 일에 괜히 흥분하기도 하며 까마득한 후배가 엊그제까지 내 자리였던 곳에 앉아있는 모습이 꽤나 생경하게 느껴진다. 아직도 내가 그 자리에 있어야 될 것 같은 착각조차 할 때가 있다. 갑자기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감이 들 때도 있다. 지금 서 있는 이곳은 도저히 내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듯싶다. 그래서 힘들다. 극도로 미미해진 존재감이 스스로를 꽤나 괴롭힌다. 베이비부머가 대부분인 요즘의 퇴직자들은 착잡하다. 수십 년 간을 조직을 위하여 몸 바쳐서 일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를 세계 10위권에 육박하는 중견국가로 키워 내는 데 일조 했다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왔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자식들에게 고등교육을 시키느라 정작 자신에 대한 투자는 소홀이 했다. 바로 그 사람들이 지금 신음하고 있다. 한 없이 위축되고 소리 없이 사그라져 버릴 것만 같다. 스스로를 어떻게 추스를지도 모르는 채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내고 있다.
마음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
퇴직 후 한동안 혼란이 있겠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지낼 수는 없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갈 길이 멀기에 더욱 그렇다. 여기저기서 미래의 삶에 대한 조언을 하겠다고 다가올 것이다. 경제적인 여유, 건강, 교우, 일거리 등에 관해서 나름대로의 처방도 제시한다. 들을 때는 그럴듯하지만 실상 별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중요한 건 내 자신이다. 내가 주도적으로 내 삶을 가꾸어 가야한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서 퇴직 후의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주제는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것인가에 대한 것으로 국한한다.
인식의 전환
지금의 내가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인식해보자. 퇴직(은퇴)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때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들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지금부터는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여 도전해보자. 그것이 무엇이든 가슴이 뛰면 그만이다. 바빠서 잊고 지냈던 어릴 적 꿈을 새로 펼쳐보면 저절로 미소가 피어오른다. 수십 년이 지난 후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통해서 깊은 곳에 숨겨졌던 열정이 솟아오르는 걸 느껴보자. 우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자.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 말이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집중하면서 자신감을 키워나가자. 그러다 보면 기대도 하지 않았던 놀라운 성취감을 맛볼 때도 생긴다. 은퇴가 나를 무서운 곳으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고 있음을 경험해보자.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의연하게 새로운 현실에 맞서자.
심리적 독립
현직에 있을 때는 넘쳐나는 고객과 직원들 틈바구니에서 바쁘게 일했다. 이러저러한 모임으로 항상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런데 은퇴 후에 곁에 사람이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왠지 우울하고 외로워진다. 대부분의 퇴직자들에게 해당되는 현상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누구나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 주위에 사람이 많다고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사람이 적어서 외로운 것도 아니다. 그것을 잘 극복해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누군가가 내 옆에 없으면 외로운가? 그렇다면 마음을 다잡을 필요가 있다. 퇴직 후에 가장 필요한 것이 심리적인 독립이 아닐까 싶다. 누가 알아주거나 봐주지 않아도 나대로 즐겁게 살면 행복한 삶일진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많은 현대인들은 ‘분노조절장애’를 가지고 있다. 뉴스를 통해서 그와 관련된 사건들을 자주 접하면서 복잡한 사회구조가 인간들의 심성을 피폐하게 만들어 가는구나 하며 탄식하기도 한다.
그런데 또 하나, 이 땅에는 수많은 ‘관심조절장애’ 환자들이 있다.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고 끊임없이 관심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마음의 평안을 원한다면 누구에게나 관심 받으려 애쓰지 말자. 타인의 시선에 초연하는 법을 배우자. 애초부터 그들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도 알기를 바란다. 생각이 바뀌면 질문이 바뀌고, 질문이 바뀌면 답이 바뀐다. 과연 내가 타인에게 위로 받을 대상인가. 그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바로 떨쳐버리자. 내 존재의 목적과 역할에 대해서 진지하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그러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인다. “나는 누구를 도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자. 세상에는 나의 관심과 손길이 필요한 곳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해낼 수 있다. 사실 나는 생각보다 많은 능력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본인이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스스로가 외로움을 곱씹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자. 그 순간 심리적으로 독립할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스스로를 존중하자. 자존감은 자존심과는 다르다. 자존감(Self-esteem)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에 반해 ‘자존심’은 내가 아닌 타인에게 존중받고자 하는 마음이다.
꼰대 탈피
후배들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말아야 한다. 후배들에게 섣부른 조언이나 경고를 날리는 것은 꼭 피해야 될 꼰대의 행동이다. 그들은 우리보다 더 참신하고 더 많이 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누군가를 가르치려 드는 태도는 경원을 당한다. 그들은 더 이상 나에게서 배우던 시절의 어린애가 아니다. 조언한답시고 배려 없이 직언하는 것도 삼가라.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비록 진심으로 돕고자 하는 마음일지라도 자신의 방식만을 주장하지 말자.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새롭게 배울 것도 있다. 젊은 사람들을 대할 때 상대방을 배려하고 있는지 되돌아보자. 옳은 것과 좋은 것의 차이를 이해하자. 옳은 말을 기분 나쁘게 하지 않도록 하자.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잘 아는 것처럼 하는 행동은 위험하다. 차라리 모른다고 하는 것이 낫다. 잘못 된 충고나 조언은 낭패를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 앞에서 자주 그렇게 행동하면 그들은 나를 꼰대로 치부하고 점차 멀어지게 된다.
천천히 가기
치열한 경쟁의 장에서 물러났다면 마음가짐도 현실에 맞게 바꾸어보자. 누가 재촉하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데 마음만 급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자. 힘 빼는 연습을 해야 한다. “더 빨리, 더 잘, 더 열심히”에서 벗어나자.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지 않으면 게으른 사람이 되던 시절은 지나갔다. 때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느긋하게 자신을 내버려 둘 때도 있어야 한다. 수십 년 동안을 얼마나 과속으로 달려왔는지 돌이켜보자. 그러니 지금부터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주변 경관도 감상하는 여유를 가져보자.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보면서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와는 전혀 다른 것들, 실적과는 무관한 것들이 가슴 떨리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새로운 멋을 찾아 천천히 걸어가 보자. 과거의 내가 멀어지는 것에 대한 아픔보다도 새로운 내가 태어나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놀라운 전율을 경험하게 된다.
一切唯心造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어려움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충분히 극복할 거라는 믿음이다. 그리고 나만의 멋과 나만의 방법으로 살아보자. 누구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에 따라 삶의 질을 결정된다. 집착할수록 불행해지고 내려놓을수록 가벼워진다. 꼭 있어야 한다고 여겼던 것들을 언제든지 놓아줄 마음이 있으면 오히려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 떵떵거리던 권력자들도 나보다 잘 나가던 경쟁자도 때가 되면 저 세상으로 간다. 그걸 보면서 무엇을 느끼는가.
행복은 주관적이다.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알게 된다. 굳이 小確幸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아직 살아있고 건강하다면 행복의 요건을 다 갖춘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글쓴이 = 나병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