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셜리더스) 양언의 기자 = 주주 권리 강화를 위한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 참여 기관이 지난해 큰 폭으로 늘었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한 기관들이 실제로 기업 주주총회에서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나 올해 정기주총 시즌을 앞두고 기업들의 긴장감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 스튜어드십 코드 확산…참여 기관 120곳 육박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내 상장사에 투자한 기관투자자가 타인의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행해야 할 세부 원칙과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기업의 정기 주총 등에서 기관투자자가 회사 측의 '거수기'나 다름없던 관행을 바꿔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유도하기 위해 국내에 2016년 12월 말 도입됐다.
28일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을 지원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국내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 기관은 116곳으로 1년 전(73곳)보다 43곳이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3곳이 더 합류해 현재 참여 기관은 총 119곳이다.
국내 도입 이후 첫해인 2017년에는 참여 기관이 18곳 느는 데 그쳤으나, 이듬해 7월 국민연금을 필두로 굵직한 기관들이 속속 참여했다.
작년에는 연기금인 사학연금과 자산운용사 14곳,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 9곳, 보험사 3곳, 은행 1곳, 증권사 1곳 등이 스튜어드십 코드 대열에 추가로 합류했다.
이로써 현재 업권별 참여 기관 수는 자산운용사(42곳)와 PEF 운용사(36곳)가 가장 많고, 보험사(5곳), 증권사(3곳), 연기금(2곳)·은행(2곳)·투자자문사(2곳) 등 순이다.
◇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주총 안건 반대율에 영향"
스튜어드십 코드 확산과 함께 지난 2년간 기업 주총에서는 회사 측이 제안한 안건에 기관투자자가 반대표를 던지는 비율(이하 반대율)이 높아지는 추세가 확연히 나타났다.
기업지배구조원의 의결권 정보광장 포털에 따르면 재무제표·이익배당 안건의 경우 기관투자자의 반대율이 2018년에는 평균 1.1%에 불과했지만, 작년에는 36.2%로 급등했다.
정관변경 안건 반대율도 7.2%에서 11.0%로 높아졌고, 사내이사 선임 안건 반대율은 4.8%에서 28.9%로 뛰어올랐다. 사외이사 선임(6.8%→22.4%), 감사위원 선임(6.0%→22.5%), 감사 선임(15.6%→18.8%), 이사 보수한도(6.6%→19.1%), 감사 보수한도(2.8%→6.4%) 안건 역시 반대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또 작년 상반기 기업지배구조원이 자산운용사를 대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여부가 2017∼2018년 정기주총 안건 반대율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결과,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지 않은 자산운용사의 반대율은 거의 변화가 없는 반면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한 자산운용사의 반대율은 2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에 앞장선 몇몇 자산운용사들은 회사 측 안건에 반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배구조나 배당 계획 등을 문제 삼아 주주 서한을 보내는 등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벌여 관심을 모았다.
여기에 올해는 기관투자자의 주주 활동과 의결권 행사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관련 제도가 개선돼 이런 기류는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주총 소집 시 이사나 감사 등 임원 후보자의 체납 사실이나 부실기업에 임원으로 재직했는지 여부 등을 함께 공고하도록 한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회사 측이 선임하려는 후보자의 자격을 검증할 수 있는 정보가 확대돼 주주 입장에서 반대할 여지가 커질 수 있다.
게다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작년 12월 적극적 주주 활동을 위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의결해 국민연금이 횡령, 배임, 사익편취 등으로 기업가치를 훼손한 기업 이사의 해임이나 정관변경을 요구할 수 있는 주주 제안도 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올해 주총에서는 기업의 핵심 지배구조를 뒤흔드는 안건이 다수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 기업들, 대응책 마련 '분주'…"의안 검토 신중히"
기업들은 올해 정기 주총에서 지배구조나 경영 방침에 대한 주주들의 견제가 한층 더 강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특히 주총 의안을 상정하는 데 전보다 신중해진 분위기다. 주주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무리한 안건을 올렸다가 자칫 이에 반대하는 주주 서한을 받는 등 논란을 일으켜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주총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회원사들을 위해 기업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주총 의안 검토 및 분석을 돕는 '지배구조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작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20여개 기업이 이 서비스를 신청해 자문위원회의 검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상장사협의회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올해 주주권 행사 관련 법제 환경이나 국민연금의 가이드라인 시행 등에 따라 주총 준비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분위기"라며 "아무래도 주총 의안을 상정하는 데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전문가로 구성된 '지배구조 자문위원회' 소속 위원 10여명과 협의회 내부 직원들이 자문 신청 기업들의 의안을 살펴보고 회사 측의 논리가 맞는지, 법에 저촉되는 점이나 문제점은 없는지 등을 사전에 검토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작년에 기관투자자들의 주주행동이 활발해지면서 기업들이 기관투자자의 경영 내용 문의나 자료 요청, 주주가치 제고 요구 등에 전보다 더 협조적으로 바뀐 분위기가 확실히 감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