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셜리더스) 이수민 기자 = 가히 ‘뮤지컬 스탠다드’가 아닐까. 초반부터 휘몰아치는 전개와 화려한 비주얼, 폭발적인 넘버가 관람객의 마음을 단숨에 빼앗더니 말미에는 묵직한 메시지로 울림이 남긴다. 서사, 음악, 연기, 무대구성, 메시지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촘촘한 짜임새를 보이며 뮤지컬의 존재가치를 제대로 증명해 보인다. 2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웃는남자>의 성공적 귀환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자부심 뮤지컬 <웃는남자>(제작 EMK 뮤지컬컴퍼니)가 2020년을 맞이해 새 단장을 마치고 돌아왔다. 총 5년간의 제작기간, 175억 원대의 초대형 제작비가 투입되어 총 24만명의 관객을 동원, 2018년 한국 창작뮤지컬 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웃는남자>는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17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끔찍한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윈플렌(박강현, 이석훈, 규현, 수호)의 여정을 따라 정의와 인간성이 무너진 세태를 비판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의 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조명했다.
한국 뮤지컬의 자부심이라고 불릴 만큼 공을 들인 티가 나는 무대 장치와 수준급의 영상미는 라이선스 대작 뮤지컬에 못 지 않다. (커튼콜 포함) 180분가량 진행되는 긴 공연임에도 한순간 지루할 틈이 없다. 그만큼 흡입력 강한 스토리와 빠른 전개 구성이 관람객들의 집중도를 끌어올렸다.
극의 첫 장면인 선박 난파 장면은 프롤로그임에도 극 말미까지 기억에 남을 만큼 강한 인상을 남긴다. 실제 배를 새롭게 제작하여 현실감을 높였으며 여기에 화려한 영상미가 더해져 관객들의 모든 감각을 일깨웠다. 본격적이고 제대로 된 에피타이저를 맛본 셈이다. 초반부터 잔뜩 힘을 주는 데는 이어 등장할 장면들 또한 이에 못 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의 표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7세기 귀족들의 생활상을 비추며 이를 풍자하는 메시지는 초연보다 좀 더 견고한 형태로 표현된다. 1막에서 귀족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던 ‘가든 파티’는 ‘우린 상위 일프로’ 넘버로 리프라이즈 됐으며 같은 멜로디 구절을 이용해 극의 복선을 살렸다. 이는 한층 더 풍자의 느낌을 배가시켰으며 극의 메시지는 더욱 명확하고 강하게 전달된다.
또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그윈플렌의 의지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2막에서는 장면의 순서를 변경해 서사를 더욱 단단히 쌓아 올리는 데 주력했으며 조시아나 솔로 넘버인 ‘아무 말도’, ‘내 삶을 살아가’의 가사를 변경해 캐릭터의 설득력을 더했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 뮤지컬 <웃는남자>의 메인 시놉시스이자 이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궁극적 메시지다. 17세기 영국에서는 아이들을 납치해 기형적인 괴물로 만들어 귀족들의 놀잇감으로 팔던 인신 매매단(콤프라치코스)이 존재했다. 이들로 의해 기이하게 찢겨진 입을 갖게 된 그윈플렌은 주인공이자 상징적 인물로서 극을 이끈다.
초연에 이어 재연에서도 그윈플렌 역으로 분한 수호(엑소)는 한층 더 농익은 연기력과 탄탄해진 발성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조시아나 여공작 역의 신영숙은 이번 수호의 활약에 “작년에도 참 잘했지만 이렇게까지 실력이 늘 수 있나 싶다. 사랑스러운 얼굴과 상반되는 상남자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줄 것”이라며 극찬하기도.
수호 역시 초연 때보다 업그레이드 된 그윈플렌을 강조하며 영화 <조커>를 통해 캐릭터를 새롭게 참고, 교집합을 살피고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무대 위에서 고스란히 전달된다. 특히 <웃는남자>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웃는남자’ 넘버에서는 뜨겁게 폭발하는 수호의 가창력과 절정으로 치닿는 감정선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 아이돌 출신의 꼬리표를 과감하게 떼어 버리는 새로운 발견이라 볼 수 있다.
수호 외에도 심금을 울리는 ‘인생 장면’들은 쉴 새 없이 몰아친다. 특히 뮤지컬계 대모 신영숙은 자신의 위치를 입증하는 것을 넘어 경지에 이르는 연기력을 선사한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찾기 어려운 과감하고 도발적인 여성상 조시아나 역을 군더더기 없이 소화하며 캐릭터와 100% 혼인일체 된 모습으로 관객들을 유혹했다.
데아 역의 강혜인 또한 초연에 이어 재연에 참여했다. 섬세하면서도 투명한 음색을 자랑하며 앞이 보이지 않는 데아의 상황에 완벽하게 몰입하는 수준급 연기력을 자랑했다. 또 초연에서 매 장면마다 무대에 올라 신선함을 안겼던 바이올리니스트(고예일, 허재연) 또한 이번에도 무대에 전면 등장한다. 페드로 역의 이상준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존재를 한 번 더 짚으며 “늘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에 하고 있다. <웃는남자>의 색다른 관전 포인트이자 매력”이라고 말했다.
괴물이라 불리는 그윈플렌과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상징되는 부유계층의 대비는 전개 내내 첨예한 대립양상을 보이며 부패한 기득권을 비판한다. 여기에 그윈플렌, 데아, 우르수스의 애틋한 가족애도 여운을 더한다. 현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회적 메시지와 실제로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지만 진실된 관계를 통해 증명한 사랑은 묵직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여기에 황홀한 시각적 장치와 수준급의 음악까지 더해지니 가히 명성이 자자한 뮤지컬답다. ‘소문난 잔칫집에 먹을 것 없다’는 기우는 <웃는 남자>에게 통하지 않는다.
한편 뮤지컬 <웃는남자>는 오는 3월 1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