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셜리더스) 이수민 기자 = ‘깜냥’, ‘정도(正道)’, ‘다작’, ‘단계’··.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배우 조병규가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들이다. 현재 심정과 스스로의 객관화, 배우로서의 지향점 등 조병규는 몇 가지의 단어 속에 생각을 압축하며 본인을 설명하는 법을 안다. 마냥 장난기 많은 소년 같은 이미지지만 내뱉는 말의 무게는 누구보다 깊고 진중하다. 데뷔 이래 5년 간 70여개의 작품을 소화하며 만들어진 굳건한 철칙과 자기 검열은 오늘날 ‘영리한 배우’ 조병규를 납득가능 하게 했다.
지난 14일 종영한 SBS <스토브리그>는 팬들의 눈물마저 마른 꼴찌팀에 새로 부임한 단장이 남다른 시즌을 준비하는 뜨거운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마지막 회 최고 시청률 19.1%(닐슨코리아, 전국기준)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 허술함과 웃음 한 스푼, 조병규 표 한재희의 탄생
조병규는 <스토브리그> 속 낙하산으로 드림즈 운영팀에 들어온 직원 한재희 역을 맡아 막내다운 싹싹함과 열정 넘치는 모습으로 사랑받았다. 그는 “한 해의 시작이랑 마무리를 <스토브리그>로 할 수 있어서 영광이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랑을 주셔서 지치지 않고 잘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스토브리그>는 매회가 가면 갈수록 입소문을 타며 단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마지막에는 첫 회보다 3배를 뛰어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이럴수 있었던 데는 탄탄한 서사의 힘이 컸다. 조병규 역시 “처음에 대본을 보면서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분명히 인기를 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서사가 무척 탄탄하고 구성이 치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야구를 모르는 분들도 이렇게 열광해주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나 역시 그런 부분이 놀라기도 했지만 분명한건 ‘웰메이드 작품’이었다는 것이다”라며 대본의 완성도를 강조했다.
유난히 몰입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출연 배우들은 물론 시청자들 또한 <스토브리그>에 푹 빠져 실제 현존하는 야구팀인 듯 지지의 목소리를 보내기도 했다. 조병규는 “확실히 몰입도가 높았다. 봐주는 시청자 분들도 그렇고 프런트에 있는 배우들도 그랬다. 이번 포상휴가를 갔을 때도 다들 전지훈련느낌으로 가더라. 촬영장 밖에서도 배역이름으로 부르곤 했다”며 웃었다.
이번 배역을 위해서 조병규는 실제 야구 선수와 같은 연습장에서 혹독한 연습을 거쳤다고 털어놨다. 그는 “코치님에게 나는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공 잡는 것만 연습하면 된다고 매번 말씀드렸는데 똑같이 고강도의 훈련을 시키셨다.(웃음) 나중에는 정말 공 잡는 것만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다. 내가 손이 작고 팔목도 얇은 편이라 처음에는 아예 지탱이 안됐다. 장비들이 생각보다 무척 무겁다. 그래도 계속 연습을 하다보니까 결국 되긴 되더라. 역시 오래 해야 느는구나 생각했다”며 회상했다.
재벌 3세이지만 어딘가 허술한 한재희 라는 역할을 표현하기 위해 고심도 따랐다. 조병규는 “일단 맡아야 하는 롤이 분명했다. 낙하산과 재벌 3세라는 확실한 키워드가 있었고 이 두 가지가 사실상 호의적인 단어는 아니지 않나. 대부분 악역으로 나오는 캐릭터의 성격인데 이 불편한 키워드를 어떻게 하면 호의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스스로 생각한 건 밝은 웃음과 약간의 허술함이었다. 실제로 드라마 내 막내이기도 하다보니까 그런 부분들을 보수해서 가져가면 좋아하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제로 위로가 됐던 댓글 중에 ‘재벌 3세 낙하산 직원 중에서 가장 나쁘지 않아 보이는 건 네가 처음이다’라는 글이었다. 위로가 되고 기분이 좋더라. 잘 전달이 된 것 같았다”고 밝혔다.
◎ <스토브리그>가 조병규에게 남긴 것
조병규는 이번 작품을 통해 ‘공동체’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끼리 정말 돕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도 작품을 하기 까지 굉장히 많은 서포트가 필요하다. 실제 촬영장 내에서도 감독님을 비롯하여 많은 스태프들의 도움이 컸듯이 작품 내에서 선수들이 경기를 하기 까지 모든 과정을 우리(프런트)가 탄탄하게 준비해야 되는 구나 깨달았다. 아마 그 부분이 <스토브리그>가 지향했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배우라는 나의 실제 직업과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작품을 하면서 역지사지를 느꼈다. 선수를 이해하면서 소속사 식구들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폭 또한 넓어졌다. 뭐든지 하나의 일을 해결하기 까지 과정이 쉬운 게 없구나 깨달았다”며 생각을 전했다.
<청춘시대>에 이어 두 번째 같은 작품을 하게 된 박은빈에 대한 언급도 이어졌다. 조병규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착한 사람”이라며 애정을 보였다. 그는 “(박)은빈 누나가 딱 내가 산만큼 연기를 했더라. 워낙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서 맘 편하게 연기를 할 수 있었다. 밝은 분위기 속에서 재밌게 촬영을 했다. 서로 장난도 많이 치고 실없이 웃을 때가 많았다. 정말 착한 사람이라는 걸 매순간 여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촬영을 진행하며 박은빈에게 좋은 에너지를 얻었다면, 남궁민을 보면서는 현실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조병규는 “(남)궁민 형 역시 워낙 베테랑이지 않나. 스스로 형을 보면서 배운 게 많다. 아직 나는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짧아서 내가 가진 생각을 현장에서 얘기하는 게 어려울 때가 있다. 방법도 잘 몰라서 조심스러웠는데 형을 보면서 생각을 말할수록 좋은 과정을 걷게 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구나를 알게 됐다. 마음으로 앓는다고 좋은게 하나도 없구나,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발전적으로 나가는 게 맞구나 생각했다. 형 덕분에 촬영에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고마운 마음을 보였다.
◎ 이름 없는 단역부터 주연배우가 되기까지, 조병규의 원동력
조병규는 올해로 데뷔 5년차지만 출연한 작품의 개수는 무려 70개에 달한다. 이름도 없는 단역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지금으로 올라오기까지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만큼 한 작품 한 작품 소중함을 절실히 느낀다며 그간의 생각들을 털어놓았다.
“다른 수많은 배우들과 선배님들에 감히 비할 순 없지만 내 경력에 대한 조금의 자부심은 있다. 정말 작은 배역부터 시작했고 이름도 없는 조연에서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며 이제 포스터에 이름을 올릴 정도까지 됐다. 그 과정에는 <스카이캐슬>이라는 작품도 있었고 첫 상업 영화였던 <우상>도 있다. 나름 배우로서 정도(正道)를 걸어오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탈선하지 않고 차분히 쌓아왔기 때문에 내가 원했던 좋은 선배님들의 모습에 한발 한발 가고 있다고 생각 한다. 원래 스스로에게 굉장히 박한 사람인데 딱 그 부분만큼은 칭찬을 해주고 싶다. 정말 5년 동안 쉬는 날 없이 촬영장에만 있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지금 정도까지 올라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앞으로도 쉬지 않고 열심히 정도를 걸어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의 말처럼 5년을 내내 촬영에 임하면서 한번쯤 지칠 법도 했을 터, 조병규는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아직 이루고 싶은 것이 훨씬 많다”며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작은 역할을 많이 하다 보니 그것 하나하나가 정말 소중하고 중요한 기회였다. 나의 사적인 부분을 다 포기해서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이라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다. 지금도 일을 못 하게 될 것 같은 두려움도 있다. 휴식을 다 포기해서라도 좋은 작품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이제는 예전보다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기도 했고, 회사에 들어왔으니 조금 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겠지만 가급적이면 길게 공백기를 가지지 않을 예정이다. 아직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며 의지를 보였다.
배우 조병규를 대중들에게 각인 시켜준 작품 중 <스카이캐슬>을 빼놓을 수 없다. 여전히 함께 했던 배우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 중이며 지난해에는 김보라와 열애사실을 공개하며 누리꾼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조병규는 “서로 여전히 잘 만나고 있다”며 기분 좋게 웃어 보였다.
함께 촬영했던 배우 김혜윤과 김보라 등 많은 동료들이 지난해 주연배우로 활약상을 이어가며 조병규에게도 메인 역할에 대한 갈증이 생기진 않았을까. 그는 “아직까지는 그럴 깜냥이 아니다”라며 재치 있게 받아쳤다. 그러면서 “사실 아직까지는 그럴 욕심이 없다. 부담감을 이길 자신도 없고 모든 배역이 다 소중하고 감사할 뿐이다. (김)혜윤이나 (김)보라나 (김)동희 모두 다 잘 하고 있다. 그런 부분들은 열심히 응원해주고 싶고 나는 조금 더 천천히 가고 싶은 생각이 있다. 그런 부담을 이겨낼 깜냥이 안 된다. 천천히 정도를 걸어 나가겠다”며 솔직함을 보였다.
“<스토브리그>는 나에게 배움의 장이었다. 이전에는 내 대본밖에 볼 줄 몰랐다면, 이번에는 베테랑 선배님들을 보면서 어떻게 처세하고 연기를 해 나가야 하는지 알게 됐다. 배우로서 좋은 학습의 장이었다. 그런 지점에서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큰 성장을 이룬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