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셜리더스) 윤희수 기자 = 영화를 극장에서만 본다는 개념도 이제는 옛말이다. 영화감독들이 스크린이 아닌 안방극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봉준호 감독이 넷플릭스 영화 <옥자>의 국내 극장개봉을 앞두고 몸살을 앓았던 3년 전과 비교해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극장과 안방 콘텐츠의 벽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영화와 드라마의 첫 크로스오버 도전
한국영화감독조합(DGK)은 지난 2월 OTT 서비스 업체 웨이브와 손잡고 영화‧드라마의 크로스오버 작품인 <SF8>을 제작, 오는 8월 편성을 확정했다. 민규동, 오기환, 노덕, 장철수, 안국진, 이윤정, 한가람, 김의석 등 8명의 영화감독이 연출을 맡아 각 40분씩 총 8편을 제작한다.
<SF8>은 러닝타임, 옴니버스 형식, TV 및 인터넷 기반 서비스에 <블랙미러>를 연상케 하는 스토리까지 넷플릭스용 시리즈와 닮은 점이 많다. 대중들의 영상매체 소비 방식이 최근 눈에 띄게 변화하면서 에피소드 형식의 간결한 시리즈물에 대한 수요도 증가했다. 마틴 스콜세지, 마이클 베이 등 해외 거장들 또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줄줄이 제작하는 추세다. 장편뿐만 아니라 단편, 옴니버스 형식을 통해 넷플릭스와 다양한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SF8> 또한 이 같은 변화에 발맞춘 시의적절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민규동 감독은 “SF영화는 많은 영화감독에게 감독의 꿈을 키워준 원동력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예산과 좁은 시장의 한계로 아쉽게도 다양한 작품이 탄생하지 못했었다. 지난 2년간 감독조합 대표로서 회원 감독들의 다양한 창작 기회를 확장해줄 숏폼 영화의 플랫폼을 찾고 있던 차에 MBC, 웨이브와 뜻을 함께할 수 있었다. 여기에 최근 탄생한 다양한 소재의 SF소설의 에너지도 한데 모았다”고 밝혔다. <SF8> 프로젝트가 새 장르의 번영과 함께 유의미한 족적을 남길 수 있을지 업계와 소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병헌이 끌고 연상호가 밀고, 안방극장의 변화
그간 이재규, 김석윤 감독 등 드라마의 성공에 힘입어 영화감독으로 자리를 확장하는 케이스는 간혹 있었으나 반대의 경우는 드물었다. 영화 <고스트맘마>, <하루> 등을 만든 뒤 안방극장으로 넘어와 <연애시대>, <일리있는 사랑>,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등을 연출한 한지승 감독이 가장 성공적인 사례였다. 하지만 플랫폼 간의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점차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있다. 지난 해 천만 영화 <극한직업>을 연출한 뒤 차기작으로 드라마 <멜로가 체질> 메가폰을 잡은 이병헌 감독이 이 배턴을 이어가게 됐다.
뒤이어 영화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은 OCN 월화드라마 <방법>의 작가로 대본을 집필했다. 애니메이션 감독 출신 연상호 감독은 <사이비>, <서울역> 등 인상적인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눈도장을 받은 뒤 첫 실사 영화 <부산행>으로 1000만 관객 기록을 세웠고 <방법>을 통해 본인만의 독특한 색채를 녹여내고 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군도>, <공작>의 윤종빈 감독도 차기작으로 드라마 노선을 택했다. 그는 배우 하정우와 함께 <수리남>을 기획 중이다. 예상 제작비 400억 원의 초대형 프로젝트 <수리남>은 남미국가 수리남에서 마약왕이 된 한국의 실화를 그렸다. 넷플릭스, 아마존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공개 여부를 논의 중이며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에 합류하면서 국내 동시 방영도 검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