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셜리더스) 이수민 기자 = 가히 눈부신 행보다. <나쁜남자>와 <선덕여왕>으로 스타성과 실력을 한 번에 입증한 김남길이 지난해 <열혈사제>를 통해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대상 이후 처음 선보이는 영화 <클로젯>은 관객 수도, 흥행여부도 무엇하나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장르물이지만 그는 조급해하거나 섣불리 기대하지 않았다. 한때는 이기적인 성공도 원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쌓이는 경험들이 성공에 대한 기준을 점차 바꿔놓았다. 비로소 ‘내려놓는 법’을 알았을 때, 김남길은 이미 최고의 배우가 돼있었다.

◇ 기존에 없던 미스터리 캐릭터, 경훈을 연기하는 법
 
김남길은 맡아 유쾌함과 진지함을 넘나드는 본인 특유의 매력을 경훈 캐릭터에 투영시켰다. 재치 있다가도 서늘한 연기력으로 상반된 분위기를 선보였다. 이는 기존 공포, 미스터리 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캐릭터이기도 했다. 김남길은 “영화 기획 단계부터 조금은 분위기를 풀어주는 역할로서 경훈을 표현하고자 했다”며 캐릭터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실제로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경훈이 쉼표 역할을 했다. 사실 영화에 표현된 것보다 조금 더 웃기게 가볼까도 생각했다. (하)정우 형과 붙으면 재미있는 장면들이 워낙 많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톤 속에서 혼자 튀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씩은 자제를 한 편이다. 막상 영화를 보니까 좀 더 가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남는다.(웃음) 전 작품들에서도 진지함과 코믹함을 넘나드는 캐릭터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캐릭터가 익숙했지만 이번에는 그 갭의 차이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훈이 장르물 안에서 캐릭터적 성향이 짙기보다 현실과 가까운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남길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계속 하나의 감정만 가져가지 않는다. 사실 ‘트라우마’라는 단어는 원래 없던 단어라고 하더라.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도 그 아픔에만 몰입되어 살순 없지 않나. 경훈 또한 과거가 있는 인물이지만 해학적으로 표현된 부분도 있고 여러 가지 감정을 가지고 표출한다. 힘들어도 잠시 웃어가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후반부에는 이계(죽은 자들의 공간)에 놓인 하정우와 현실에 있는 경훈의 퇴마 장면이 긴 호흡으로 이어진다. 각자 다른 공간에서 펼치지는 폭발적인 두 사람의 연기는 관객들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렸다. 특히 김남길의 ‘원맨쇼’는 작품에서 손꼽힐 만큼 굵직한 잔상을 남겼다.
 
김남길은 해당 퇴마 신에 대해 “사실 누군가와 주고받는 게 아니라 혼자 연기를 하다 보니까 힘든 부분도 있었다. 감독님이 ‘이 장면은 하정우와 대비, 교차 되어서 편집이 될 거다’라고 말해 주셔서 템포나 지치는 타이밍들을 잡아가긴 했는데 처음에는 감이 없으니까 너무 과하게 연기를 했다. 혼자서 주문을 외우는 신에 강하게 들어가다 보니 나중에는 스태프들이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몰입을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확 가는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중간에 굉장히 지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사실 퇴마라는 소재나 방법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조금은 정서적으로 표현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작품에서 그려지는 퇴마 신들과는 차별성을 주고 싶었다. 증명되지 않은 초자연적인 악마나 귀신을 응징하는 게 아닌,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느낌이 들 수 있게끔 (상훈을) 도와주는 조력자의 역할로서 그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점점 세기를 낮추며 감을 잡아간 것 같다”고 설명했다.
 
◇ “공포물 잘 못 봐” 김남길이 <클로젯>을 선택한 이유
 
실제로 김남길은 공포, 미스터리 장르물에 취약하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번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김남길은 “새로운 것들에 대한 열망, 해보지 못 한 장르, 경험하지 않은 캐릭터를 가져가고 싶었다”며 차분히 그 이유를 밝혔다.

 

그는 “공포나 오컬트물은 내가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도 없고 일단은 내가 볼 때 즐거워야 하는데 사실 잘 보질 못 한다. 그래서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의문이 있었다. 그때 (하)정우 형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에 장르의 다양성에 대해 말로만 고민 하지 말고 나서자’, ‘우리가 이걸 잘 만들어서 잘 되게 하면 또 이런 장르에도 투자가 되지 않겠냐’고 하더라. 평소에 사적인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나누곤 했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출연을) 반대할 수가 있겠나. 꼼짝없이 알겠다고 했다”며 웃어보였다.
 
실제로도 겁이 많은 편이라는 김남길은 여타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무서운 상상을 하고 혼자 오싹함을 느끼기도 한다며 인간적인 에피소드를 늘어놓았다. 그는 “귀신의 존재를 조금 믿는 것도 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는 게 가끔 무서워서 계단으로 올라갈 때도 있었다. 뛰어가면서 노래를 불렀다.(웃음) 평상시에도 책상에 앉아 있다가 누가 날 잡아 당기는 상상을 하곤 한다. 다행히 가위는 한 번도 안 눌려봤다. 머리만 닿으면 기절하는 편이라 그런가보다”라며 웃어보였다. 

“단순히 장르에 치우치지 말자는 이야기를 했다. <클로젯>은 사회고발적일수도 있지만 결국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증명되지 않은 초현실적인 것에 초점에 맞추기보다는 모든 원인은 사람에게 있다는 생각으로 봐주시면 될 것 같다.”

 
◇ ‘연기부터 먹방 조언까지’… 새롭게 느낀 하정우의 힘
 
평소에도 하정우와 작품에 대해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아왔지만 함께 작품을 참여한 것은 <클로젯>이 처음이었다. 바깥에서 만날 때와 현장에서 볼 때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똑같이 말이 많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연기를 저렇게 대충해나 싶을 정도로 힘을 빼고 하는 느낌이 있다. 그게 정말 큰 장점이더라. 한 장면에 힘을 주기보다는 극의 전체를 보면서 밸런스를 맞춘다. 그 조절 능력이 정말 뛰어난 배우다. 보통 배우들이 영화 내 분량이 많지 않을 때, 장면마다 욕심을 내서 힘주어 연기하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욕심을 냈던 부분이 있다. 그럴 때마다 정우 형이 ‘과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조절 해줬다. 평소에는 친해도 연기를 같이 하게 되면 약간씩 틀어지는 일들도 있다. 내 캐릭터를 잘 만들고 싶은 욕심들이 서로 생기다 보니까 현장에 들어가면 그런 부분에서 마찰이 생기기도 하는데 정우 형은 안, 밖에서 모두 (관계가) 똑같이 유지 되더라”
 
이번 작품에 하정우가 제작자로 참여한 만큼 촬영 현장에서 제작자와 배우로서 두 가지 모습이 동반됐다. 함께 호흡을 맞추는 상대 배우로서 제작자인 하정우가 부담스러운 적은 없었을까. 김남길은 “사실 어떤 부분에서는 걱정도 했었는데 정말 그런 게 없었다. 제작자일 땐 제작자 마인드로 임하고 연기를 할 땐 오롯이 배우로서 정확하게 들어왔다. 실제로 산만하다 싶을 정도로 일을 나눠서 잘 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더라. 나는 한 번에 하나의 일 밖에 못한다. 그런걸 보면서 저걸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클로젯> 속 등장하는 김남길의 ‘라면 먹방신’이나 ‘해바라기씨 먹방신’은 소소한 웃음 포인트로 작용한다. 해당 장면을 언급하자 “원조 먹방 배우가 옆에 있었지 않냐”며 먹방신의 비하인드를 털어놨다. 김남길은 “먹는 장면들을 찍기에 앞서 (하정우) 형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냥 ‘맛있게만 먹어라’ 라고 성의 없이 말해주더라”라며 “디테일한 소리를 내고 입에 최대한 많이 넣으며 굶고 오라고 했다. 평소에 라면을 무척 좋아하는데도 2~3개씩 먹으려니까 느끼하더라. 해바라기씨 장면은 최대한 경훈의 깐족거리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현장에서 즉석으로 먹은 거다. 사실 스태프들 간식이었다. 톡톡 까면서 먹는 느낌이 경훈의 가벼운 모습을 표현할 수 있겠다 싶어서 일부로 얄밉게 먹으려고 노력한 장면이었다”라고 털어놨다.

◇ “대상 이후 흥행 부담?” 김남길의 내려놓는 법
 
김남길은 지난해 연말 SBS <열혈사제>로 대상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영화 <클로젯>은 대상 이후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흥행에 대한 부담감으로 이어질 법 했다. 하지만 그는 “솔직히 부담은 정말 없다”며 허심탄회하게 소감을 밝혔다.
 
김남길은 “사실 대상을 받았을 때도 생각보다 큰 감흥은 없었던 것 같다”라며 “흥행이나 관객 수는 내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성공의 기준이 조금씩 바뀌었다. 기본적으로 부끄럽지 않는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을 한다. 현장에서 스태프와 배우들을 모아놓고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어디 가서 서로의 필모그래피를 말할 때 ‘나 그런 작품도 했었어’라고 자랑스럽게 만들 수 있는 작품을 하자고. 기본을 지키면서 가다보면 사회적인 이슈와 맞물려서 확장성을 가질 때도 있고 외면을 받을 때도 있다. 요즘에는 어떤 게 정답일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고민은 작품을 잘 만든 뒤에 하는 게 맞지 않겠나.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그저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숫자보다는 관객들로 하여금 좋은 작품을 봤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배우로서 삼아야할 최우선 목표인 것 같다”고 생각을 전했다. 

“대상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받고 좋았던 점이 하나 있다. 배우로서는 직업적으로 당연한 건데 우리들도 카메라와 대중들 앞에서 설 때 두렵고 숨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럴 때 용기를 준 것은 주변에 좋은 동료들, 사람들이었다. 나에게 용기를 준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대상을 받고 한 명 한 명에게 그 공을 돌릴 수 있다는 것, 그런 이유에서 상을 받는 것은 참 좋았다.” 

 

◇ “꾸준히 작품 할 것” 김남길이 말하는 경험의 중요성
 
김남길도 한때는 작품 흥행성적에 대해 엄청난 부담감을 가질 때도 있었다고. 차츰 경험이 쌓이며 서서히 달라진 성공 기준 덕분에 지금은 완전히 내려놓는 법을 체득했다고 말했다.

김남길은 “어릴 때는 아무래도 성공의 기준이 지금과 많이 달랐다. 무조건 흥행을 하고 잘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다음이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 작품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적인 마음도 있었다. 지금은 성공에 대한 집착보다는 책임감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 것 같다. 보는 시점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예전에는 무언가를 보여줘야겠다는 강박에 시달렸다면 지금은 그저 현장에서 연기 하는 게 감사하다. 또한 앙상블과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함께 좋은 작품을 만들면 결과는 따라오게 된다. 성적과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작품에 책임감을 가지고 잘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남길은 과거 <선덕여왕>으로 스타덤에 올랐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는 “예전에 <선덕여왕> 때는 덜 유명했고 더 어렸었다. 그 당시에도 결과에 따라 마음이 좌지우지 하지 않는다고 말은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어리기도 했고 작품 선택 기준의 폭도 없었다. 영향을 받기 충분한 상태였다. 그땐 삶의 변화가 많았는데 지금은 변화가 많이 없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감사하게 작품을 이어오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나름의 연기철학을 가지게 된 것 같다”며 차분히 과거를 회상했다.

올해의 계획은 “스스로 즐거운 작품을 많이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랜 경력에 적지 않은 작품을 소화했지만 여전히 김남길은 경험의 힘을 믿으며 끊임없이 배워 나갈 것을 강조했다. 그는 “생각보다 영화 필모그래피가 적다. 기회만 되면 가리지 않고 많이 작품을 하고 싶다. 하다보면 다른 것들이 보이기도 하고 뭐든지 하면 는다. 그런 이유에서 연기도 꾸준히 다양한 작품으로 접근하고 싶다. 작품 또한 상업적인 것들을 고르기 보다는 내 명분만 있다면 책임감을 가지고 즐겁게 적극적으로 임할 생각이다”라고 목표를 다졌다.

“희미한 성공에 대해 불안하면서도 항상 자신감은 충만했다.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알아서 무엇을 노력해야 되는지 알기 때문이다. 어떨 땐 긍정적인 성격이라 그 안에서 잘 할 수 있는 걸 찾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경험이 쌓이고 부딪히면서 어느 순간 내려놓는 법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지금은 많이 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