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파이낸셜리더스) 전병호 기자 = 이자는 쉽게 말하면 일정 기간 돈이나 곡식 등의 재화를 타인에게 빌려주고 그 대가로서 본래의 것에 덧붙여 받는 돈이나 재화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이자의 역사는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아마도 사람들이 토지를 소유하고, 거기에서 생산된 곡식이나 가축을 거래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화폐가 발명되면서 더욱 활성화됐을 것이다.
기원전 18세기 고대 바빌로니아 인들이 만든 함무라비 법전은 곡식과 화폐에 대한 이자율을 각각 달리 규정하고 이를 어길 때 부과하는 벌칙까지 만들었다. 이자의 역사가 적어도 4천년 가까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사정은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상업이 활성화되고, 화폐경제가 성행하면서 금융업까지 출현했다. 그러자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 활동이나 이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생겨났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통치자들은 금은을 다루지도, 만지지도 말아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상업은 인간의 본성을 타락시키므로 최소화하고 그것도 허가 받은 외국인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했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화폐의 교환가치를 인정했지만, 화폐 자체를 사고파는 행위는 옳지 못하다며 이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자는 경제생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고, 그러한 사실은 이자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받아들여진 뒤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325년 열린 니케아 종교회의는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이자를 월 1퍼센트로 제한하는 규정을 공포했다. 연 이율로 따지면 12.7 퍼센트 정도 되는 금리였다. 속인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으니 실제 시장의 금리는 이보다 훨씬 높은 선에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세에 접어들면서 상황이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금욕을 실천적 이상으로 삼는 스토아 철학의 우주관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에 기반을 둔 내세 중심적인 세계관이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독교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로마 멸망 후 밀어닥친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 기독교는 사람들의 마음을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기독교의 성경에는 이자를 금지하는 대목이 여러 군데 있다. 구약의 신명기와 레위기, 출애굽기가 그러하고, 신약(누가복음)에도 ‘돈을 빌려줄 때에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말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기록되어 있다. 구약의 경우에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만 해당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신약의 경우에는 이자에 대한 보편적인, 절대적인 금지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중세 초기에는 이자가 완전히 금지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로마 멸망과 함께 상업과 화폐경제가 동시에 쇠퇴하고 자급자족을 특징으로 하는 중세의 장원경제가 성립되면서 이자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9세기에 이르러 교회는 과거 성직자들에게만 적용되었던 월 1 퍼센트의 금리를 속인들에게도 적용하는 조치를 취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10세기 이후 오랫동안 잠에 빠져있던 중세는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도시가 살아나고 상업과 화폐경제가 다시 번창하기 시작했다. 도시빈민의 탄생과 고율의 이자는 그 부작용이었다.
교회는 ‘유저리(usery)’를 신에 대한 범죄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범법자들은 종교법정에서 열리는 재판에 넘겨졌다. 우리는 유저리를 ‘고리대금(高利貸金)’이라 번역하지만, 중세의 정의에 따르면 이는 원금의 상환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원금 이외에 단 한 푼이라도 이자를 받을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서, 악덕(惡德) 대출이라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단 한 푼의 이자를 받아도 범죄가 되는’ 세상이 된 것이었다. 이자에 대한 비판은 종교적인 측면에서만 제기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서양 중세의 대표적인 신학자 토머스 아퀴나스는 로마법의 개념을 차용했다.
로마법의 개념에 따르면, 재화에는 사용 후 원래 상태로 주인에게 돌려줄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소비되거나 마모 또는 수축되어 원래 상태대로 돌려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집이나 토지 등은 전자에 속하고, 음식이나 돈은 후자에 속하는 것이다. 아퀴나스에 따르면, 집이나 토지는 그런 이유로 사용료를 받을 수 있지만, 음식이나 돈의 경우에는 그것의 소유권 자체를 넘기는, 즉, 판매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사용료의 개념이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금전 대출은 곧 화폐의 판매이며 이 경우 원금의 상환으로 쌍방 간의 거래는 종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거래에서 이자를 요구하는 것은 하나의 물건에 대해서 두 번의 지불을 요구하는 것과 같으며, 이는 사기와 절도에 해당되는 범죄라는 것이 아퀴나스의 주장이었다.
이자가 ‘신에 대한 범죄’로 규정되어 전면 금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자의 관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끼니가 어려워 곡식이나 현금을 빌렸다가 목숨과도 같은 땅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중세교회와 아퀴나스는 대출자와 차입자가 ‘위험부담을 공유하는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이자를 허용하는 예외조항을 두었는데, 대부업자들은 이 예외조항을 적극 활용했다. 그들이 이자를 어떻게 챙겼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가 있다. 그것은 돈을 빌려주는 쪽에서 대출금의 회수를 보장받기 위해서 토지를 담보로 잡은 후, 대출기간 동안 이 토지에서 나오는 수입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원금을 회수할 때 토지는 돌려주되 그동안 해당토지에서 얻은 수입을 공제하지 않음으로써 실질적인 이자수입을 얻는 방식이었다.
악덕 대출에 대한 비판은 유대인들에게 집중되었다. 공직이나 기타 정상적인 직업 공간에서 사회적으로 배제된 유대인들의 상당수가 대부업이나 전당포를 주요 생업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그린 악독한 대전업자 샤일록의 모습은 유대인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라 해서 그런 명예스럽지 못한 직업에 전혀 종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몬티(monti)라고 불리는 투자기관의 운영자들을 비롯하여 악덕 대출 영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다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프랑스의 저명한 역사가 르 고프가 지적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연옥(煉獄)에 대한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연옥은 사람이 죽은 후 천국이냐 지옥이냐가 결정되기 전에 임시적으로 머무는 곳이다. 연옥의 개념이 중요해진 것은 12세기에 이르러서인데, 연옥의 역할과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가며, 그들은 그곳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신학적 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르 고프에 따르면, 많은 대전업자들이 일단 연옥에 가면 구원의 기회가 생길 것으로 믿고, 교회를 상대로 활발한 로비를 벌렸다고 하다. 그 로비가 성공했는지, 그들은 13세기말에 이르러 드디어 연옥으로 갈 수 있는 자격을 얻어내기에 이르렀다. 르 고프는 이를 가리키며 연옥의 개념이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발달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14, 15세기에 이르러 유럽 각 지역에는 빈민은행, 또는 공익 목적의 전당포들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빈민들에게는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소정의 이자를 받아 운영비용에 보태는 방식이었다. 고아원 등을 운영하는 경우에도 이자가 허용되기도 했다. 이는 고려시대 우리나라 사찰들이 빈민구제와 승려교육을 위해 보(寶)라는 기금을 조성한 뒤에 이 돈을 외부에 대출하여 이자를 거두어들임으로써 사업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했던 사례와 유사하다. 서양에서 이러한 방식의 공적 융자기관은 1515년 당시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공식적인 인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자가 보다 더 밝은 세상에 떳떳하게 나오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글쓴이 허구생 교수는 서강대를 졸업했으며, 미국 미네소타 대학에서 영국 빈민법에 관한 연구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람들과 더불어 역사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대중적인 글쓰기와 강의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국경제》에 실었던 〈경제사 다시 보기〉와 〈다산칼럼〉, 《세리시이오》에서 진행했던 동영상 강의 〈라이벌의 역사〉도 그러한 작업의 일환이다. 저서로 《빈곤의 역사, 복지의 역사》, 《울퉁불퉁한 우리의 근대》, 《근대 초기의 영국》 등이 있다.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장을 거쳐 현재 단국대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