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릉천 따라 걷기
공릉천 따라 걷기
  • 전병호 기자
  • 승인 2020.07.06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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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나병문 경영학 박사, 前 우리은행 지점장
나병문 경영학 박사, 前 우리은행 지점장
나병문 경영학 박사, 前 우리은행 지점장

(서울=파이낸셜리더스) 전병호 기자 =

공릉천 따라 걷기(2019년 가을)

올여름에 이곳 금촌(金村)으로 이사했다. 전에 살던 아파트가 낡아서이기도 했지만, 이 동네에 마음이 끌린 가장 큰 이유는 아파트 단지 가까운 곳에 공릉천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작지만 도도(滔滔) 한 자세로 유유히 흐르는 물줄기를 항상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글 쓰는 사람에겐 적지 않은 매력이다. 운치(韻致) 있는 이 길을 따라 때론 걷고, 가끔씩 뛰어볼 생각을 하면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    

공릉천(恭陵川)은 경기도 양주에서 고양을 거쳐 파주로 흐르는 하천이다. 한강 권역의 한강 수계에 속하며, 한강의 제1지류이다. 양주시 챌봉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장흥면 부곡리에서 하천이 시작되며, 고양시 덕양구 선유동과 내유동을 거쳐, 일산동구 지영동, 파주시 조리읍의 경계지점에서 국가하천으로 바뀌고, 파주시 오도동 북쪽에서 서쪽을 향해 흘러 한강으로 합류한다. 공릉천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예종의 원비 능인 '공릉'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하천을 따라 전장(全長) 30여 km에 이르는 자전거 도로가 잘 닦여있고, 그 옆으로 보행자를 위한 길도 있어서 운동하기엔 최적의 코스다. 11월 초부터 아내와 함께 아침 운동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네 번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궂은 날씨 등의 이유로 거르는 날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그 계획을 잘 지키고 있다. 

아침 6시 30분에 출발하여 80분 후인 7시 50분에 귀가한다. 오고 가는 시간을 포함하여, 빠르게 걷기, 뒤로 걷기, 운동기구를 이용한 마무리 운동 등을 하다 보면 금방 시간이 지나간다. 걸어가며 바라보는 풍경이 하루하루 달라진다. 꽃이 지고 난 뒤 씨앗을 품고 있는 백일홍 군락을 따라 걷다 보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된다. 길옆에 조성된 억새 숲의 주인들도 비록 전성기의 모습은 아니지만 의연(毅然) 하게 서있다. 운동이 끝날 즈음, 북한산 위로 불끈 떠오르는 아침 해는 장엄(莊嚴) 하고 신비롭다.

철새 도래지인지라 기러기를 비롯한 새들이 질서 있게 무리 지어 날아간다. 11월의 찬 물살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하천을 헤엄치는 녀석들도 있다. 잘 가꾸어진 환경에 비해서, 이 시간에 운동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드문 탓인지, 걷는 사람과 자전거 타고 가는 이들을 더해도 만나는 사람들은 열 명이 채 안 된다. 상쾌한 공기를 들이쉬며 걸어가노라면 왠지 가슴이 뿌듯해진다. 때로, 마사이족 걸음걸이를 흉내 내 본다. 이렇게 멋진 길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좋은 습관을 오래 지속하고 싶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시키는 몇 가지 요인 중에서, 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지 않다. 걷고 사색(思索) 하며 대화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아침 운동을 시작한 것은 아무래도 잘한 일인 것 같다. 

셀 위 댄스? - 새벽에 춤추는 사람들(2019년 겨울)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마음속으로 구령을 붙이며 한 호흡에 여덟 걸음을 내딛는다. 내 보폭을 기준으로 하면, 아마 5~6미터쯤 전진하는 것 같다. 

오늘로 새벽 걷기 운동을 시작한 지 7주 차가 되었다.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한 주에 최소 4회 이상 하기로 한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 서서히 습관으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6시 30분에 집을 나서서 약 한 시간 반 정도의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다. 조금씩 알아가는 이 각별한 맛을 무엇과 바꾸랴.  

걷기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걸음걸이에 대해서 크게 생각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저 이동을 위해서 발걸음을 떼는 정도로 인식했던 동작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니 놀랍다. 걷기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리듬과 템포인 것 같다. 거기다 보폭과 걷는 속도, 그리고 팔을 흔드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보법(步法)이 존재한다. 

걸음의 세계가 무궁무진하다는 데 생각이 미치니, 그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서라, 성급한 마음을 자제하자. 체계적인 연구는 장기적인 과제로 넘기도록 하자.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들은 두 유형으로 나뉜다. 우리처럼 걷는 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날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방법과 이동속도는 다르겠으나, 각자가 누리는 상쾌함은 같으리라. 새벽인지라, 시야가 어슴푸레한 탓에 서로의 얼굴조차 확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거의 매일같이 마주치는 사람이 안 보이면 웬일인가 궁금하고, 여러 날 동안 나타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겼을까 걱정이 든다. 지나치며 큰 소리로 인사를 주고받을 땐 기분이 좋아지고, 먼저 인사하는데도 반응이 약하면 조금 머쓱해진다. 아무튼 우리는 운동 이웃들이다. 

출발할 때는 종종걸음으로 달리다가, 반환점을 돌아서는 보폭을 넓이고 팔도 크게 흔든다. 팔다리가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마치 춤을 추는 듯한 기분이 된다. 그리되면 걷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다. 걸음은 어느새 신나는 댄스가 된다. 

출발선이기도 한 도착지점이 저만큼 보인다. 멀리서 올림피아 마치(Olympia March)가 들려오는 것 같다. 마치 개선장군이 된 기분이다. 발걸음에 힘이 더 들어간다. 날마다 승전하는 장군을 보았는가? 여기 그 사람이 있다. 이 새벽에 또 하나의 승전보(勝戰譜)를 전하노라!

운동으로 시작하는 하루의 기쁨 (2020년 봄)

새벽 다섯 시 20분, 휴대폰의 알람 소리가 꿈결 너머로 아스라이 들려온다. 제법 익숙한 동작으로 일어나서 운동복을 차려입고 마스크도 챙긴다. 아내가 준비한 커피 한 모금을 음미하듯 삼키고 나서 함께 집을 나선다. 5시 40분이다. 작년 11월 6일부터 시작한 새벽 걷기 운동이 어느새 6개월째다. 그동안 딱 한 주를 제외하곤 매주 4일 이상을 걸었다. 반 년 가까이 꾸준히 이어져서 습관으로 자리 잡는 중이다.  

늦가을에서 초봄에 이르는 동안 밤낮의 길이가 달라졌다. 그에 따라 운동 시간도 몇 차례 조정했다. 11월엔 6시 20분부터 약 80분간이었고, 지금은 5시 40분부터 110분가량 걸린다. 낮이 길어지면 조금 더 앞당길 생각이다. 걷는 코스도 처음보다 꽤 길어졌다. ‘뒤로 걷기’는 광장에 그려져 있는 커다란 원을 따라 좌측과 우측 방향으로 번갈아 가며 돈다. 처음엔 3바퀴이던 것이 6바퀴로 늘어났다. 운동 시간 구성은 걷기 80분, 뒤로 걷기 10분, 기구운동 및 정리운동 20분 정도다. 

엊그제는 ‘걷기 도사’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걷기 운동을 시작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만났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빨랐다. 하지만 우리도 6개월째 열심히 훈련하지 않았나. 그와의 속도 차이가 이전보다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우리 실력이  꽤 성장했다는 얘기다.  

운동 길에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한겨울엔 두세 명에서 많아야 대여섯 명이었는데, 지금은 두 자리 숫자로 늘었다. 겨울엔 어두워서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었다. 그저 자전거 바퀴 소리와 인사말, 그리고 어슴푸레한 실루엣으로만 기억된다. 하지만 지금은 출발하는 시간에도 날이 훤하다. 상대방의 마스크 색깔과 모양부터 얼굴 표정까지 확실하게 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우리 곁을 지나칠 때마다 큰 소리로 인사하던 ‘인사맨’이 있었다. 에너지 넘치는 밝은 목소리가 기분 좋은 남성이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요즘엔 보이지 않는다. 마주치는 사람들 중에 몇몇은 자주 만나고, 그보다 많은 숫자는 어쩌다 스친다. 그중에서도 ‘인사맨’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걷기 6개월에, 장딴지와 허벅지에 전에 없던 근육이 제법 생겼다. 걷기에 자신이 있으니 웬만한 곳은 걸어서 간다. 그보다 더 큰 소득은 ‘마음의 근육’이다. 발걸음이 가벼워진 만큼 자신감도 커지고 매사에 더 긍정적이 되어 간다,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이 실감 난다. 더욱 감사한 것은 곁에서 함께 걷는 아내가 있다는 사실이다. 같이 살면서 쌓인 서운함이 적지 않을 터인데, 뿌리 깊은 나무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켜준 그 사람이 고맙다. 

​퇴직을 하고 나서 조금씩 생활 습관을 바꾸어가고 있다. 수십 년간 즐기던 술을 끊었다. 건강상의 이유라기보다는 머리를 맑게 하고 싶어서였다. 지금은 좋은 안줏거리를 앞에 두고도 별로 술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새벽 운동을 시작한 것도 달라진 습관이다. 나만의 공간인 작은 연구실에 출근하면, 먼저 10분간의 호흡 수련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강의나 약속이 없는 날에는 하루의 대부분을 읽고 쓰고 사색하며 보낸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을 이루어가고 있는 중이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도 1년 반이 되어간다. 그동안 연구하고 재해석(再解釋) 한 책이 네 권이다. 다음 주부터 새로 천착(穿鑿) 할 책도 골랐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급했던 성정(性情)도 점차 평안(平安) 함을 찾아가고 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으면 누리지 못할 것들이다. 그 건강을 키우고 지켜주는 것이 ‘걷기 운동’이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이야말로 최근에 내가 만난 최고의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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