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임대용 다가구·일반주택가는 인하요구 수렴…30억 초과는 안깎아줘
일부 예정가 대비 최종가 조정폭 격차 커…'고무줄' 논란도
(서울=파이낸셜리더스) 한지혜 기자 = 올해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이 역대 최고 수준의 상승률을 기록한 가운데 서울의 공시가격 급등 지역내 단독주택들이 의견청취 과정을 거치며 당초 예정가보다 상승폭이 상당부분 낮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발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일부 급격한 공시가격 인상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 이들 의견을 일정부분 수용한 것이다. 특히 전통적인 부촌이 아닌 지역의 단독주택, 서민 임대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다가구주택의 공시가격이 상대적으로 많이 하향 조정됐다. 반면 공시가격 30억원을 초과하는 초고가 단독주택은 예정 공시가격 그대로 공시돼 하향 조정 요구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가구 등 공시가 일부 인하…30억 이상 초고가는 그대로
국토교통부는 지난 24일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을 발표하면서 서울지역의 상승률이 평균 17.75%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의견청취 직전 서울 예정공시가격의 상승률이 20.7%였던 것에 비해 3%포인트 가량 낮춘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표준주택 공시가격의 인상폭이 역대 최대지만, 의견청취를 거친 인하폭도 '역대급'으로 높다고 말한다. 현실화율이 낮았던 곳의 공시가격을 급격하게 올렸다가 의견청취 과정을 거치면서 조정이 많이 이뤄진 것이다.
지난 25일 공개된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을 분석한 결과 올해 공시가격 상승폭이 가장 높았던 용산·강남·마포·성동구 등지에서 공시가격이 최초 예정공시금액보다 하향 조정된 곳이 많았다.
고가주택이 밀집한 용산구 한남동의 경우 작년에 이어 올해 표준주택으로 선정된 113개 표준주택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한 결과, 약 47%인 53개 주택의 공시가격 상승률이 예정공시가 인상률 대비 최대 29.5%포인트까지 하향 조정됐다.
이로 인해 한남동 일대 표준 단독주택의 공시가격 인상률은 최초 49.4%로 50%에 육박했으나 최종 44.6%로 낮아졌다. 주로 예정공시가격에서 상승폭이 컸던 10억∼20억원대 주택의 공시가격이 상대적으로 많이 내려갔다.
유엔빌리지길의 한 단독주택은 공시가격이 지난해 22억원에서 올해 33억2천만원으로 50.9% 오를 것으로 예정됐으나 의견청취를 거치며 최종 26억7천만원(인상률 21.4%)으로 조정됐다. 또 대사관로에 있는 공시가격 16억3천만원짜리 단독주택은 당초 예정공시가격이 29억76천만원으로 81.6% 오를 것으로 예고됐으나 최종 26억1천만원(60.1%)으로 낮아졌다.
용도별로는 서민 임대용으로 사용하는 다가구주택의 공시가격 인하가 두드러졌다. 강남구 신사동의 한 다가구주택은 지난해 공시가격이 17억원에서 올해 28억8천만원으로 69% 오를 것으로 예고됐으나 인상폭이 과도하다는 지적에 따라 최종 27억1천만원으로 인하하면서 작년 대비 상승률도 59%로 낮아졌다. 또 지난해 공시가 12억5천만원이었던 강남구 삼성동 대치동의 다가구주택은 예정공시가격이 15억4천만원이었으나 최종 14억원으로 조정됐다.
비강남권도 마찬가지다. 마포구 공덕동의 한 다가구주택은 공시가격이 작년 8억8천900만원에서 올해 15억2천만원으로 사전 통지됐으나 의견청취를 거쳐 10억1천만원으로 낮췄다. 상승률이 70.9%에서 14%로 뚝 떨어진 것이다. 동작구 흑석로의 다가구도 8억8천700만원에 통지됐던 예정가격이 25일 공시에서 8억4천만원으로 낮아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다가구주택은 서민 임대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 과도한 보유세 증가시 세입자에 대한 임대료 전가로 이어질 수 있는 점을 고려해 올해 현실화 과정에서 가격이 급격하게 오른 곳은 인상폭을 다소 낮췄다"며 "이 과정에서 현실화율이 떨어진 곳은 내년 이후 순차적으로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도 "다가구주택 밀집지역은 고급주택촌이라기보다는 주변 개발 호재 등으로 시세가 오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인상폭이 급격한 지역은 지자체와 주민 의견을 받아들여 가격을 다소 낮췄다"고 말했다.
반면, 공시가격 30억원이 넘는 고급 단독주택은 공시가격이 인하된 곳이 거의 없다. 이들 주택은 시세가 최소 50억∼60억원이 넘는 초고가주택으로,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공동주택'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타깃' 금액대다.
용산구 한남동의 경우 재벌가와 연예인들이 거주하는 이태원로 일대 공시가격 30억원 이상의 초고가 주택은 작년 대비 40∼50% 이상 올린 예정가 그대로 최종 공시됐다. 지난해 공시가격 33억4천만원인 강남구 논현동의 한 단독주택도 예정공시가격과 같은 49억1천만원으로, 작년 공시가격 38억원짜리 강남구 삼성동의 단독주택 역시 예정가와 같은 57억4천만원에 확정 공시됐다.
◇인상률 최대 3배→2배 이하로 축소 늘어…급격한 변동에 '고무줄' 논란도
당초 인상률이 최대 3배(200%)에 달했던 주택 가운데 상당수는 상승률이 2배(100%) 이하로 떨어졌다. 마포구 연남동의 한 단독주택은 지난해 공시가격이 10억9천만원에서 올해 32억3천만원으로 3배 가까이(196.3%) 오를 것을 통지됐으나 최종 10억8천만원 낮춘 21억5천만원에 공시됐다. 이에 따라 인상폭도 2배 이내(97%)로 조정됐다.
지난해 공시가격이 15억6천만원이던 연남동의 또다른 단독주택도 당초 40억6천만원으로 2.6배 오를 것으로 예정 공시됐으나 이의신청을 거쳐 2배 수준인 30억3천만원으로 낮췄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자체가 이 일대에 용도규제를 걸어놓은 것을 고려하지 않고 가격을 산정했다가 의견청취를 거치면서 (가격이) 조정됐다"고 말했다.
공시가격이 100% 이상 오를 것으로 예고됐던 성동구 성수동 서울숲 인근의 일부 단독주택도 상승폭이 100% 이내로 축소됐다. 성수동1가의 한 2층짜리 단독주택은 작년 공시가격이 14억3천만원으로, 당초 올해 165% 오른 37억9천만원으로 통지됐다가 27억3천만원(인상률 91%)으로 낮춰줬다.
성수동1가의 한 다가구주택도 작년 공시가격이 14억3천만원에서 올해 37억9천만원으로 2배 이상(103.3%) 오를 것으로 예고됐으나 최종 18억4천만원(91%)으로 조정했다. 전통적인 고급 주택가로 보기 어려운 지역은 인근의 개별 공시가격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가격을 하향 조정한 것이다.
그러나 올해 단독주택 공시가격이 지나치게 널뛰기를 하면서 일부 주먹구구식 산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실화율 조정을 위해 과도하게 높였다가 주민 반발 등으로 다시 큰 폭으로 낮춰주는 것 자체가 애초 명확한 원칙과 충분한 현장조사없이 공시가 이뤄진 게 아니냐는 것이다.
단독주택의 경우 공동주택과 달리 개별성이 강하고 거래량도 적은데 소수의 실거래 사례로 시세를 평가하고 이에 근접하게 공시가격을 높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감정평가사는 "단독주택은 땅 모양이나 용도전환 가능 여부, 내부 자재와 특수시설 등 유무 등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어서 어느 한 주택이 비싸게 거래됐다고 그 동네 단독주택 시세가 다 높다고 볼 순 없다"며 "전국 모든 주택을 일일히 평가해 공시가격을 산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정 부분의 버퍼(완충)를 둬야 애꿎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시민단체 등은 공시가격 현실화율이 여전히 낮다며 보다 강력한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경실련은 지난 25일 발표한 논평에서 "이번 단독주택 시세반영률을 53%라고 밝힌 것은 정부의 공시가격 정상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결과"라며 현실화율 상향을 요구했다.
참여연대도 "공시가격과 과세 전반의 형평성·공정성을 제고하려면 부동산 공시가격 시세반영률을 80~90%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고 논평했다.